주말에는 아무데나 가야겠다.
[이원근 지음. 벨라루나]
요즘 우리 참 바쁘게 사는 것 같아요.
그런데 열심히 일상에 충실하게 사는 것도 참 뿌듯하고 멋진 일이지만 가끔은 모든 것을 뒤로 하고 훌쩍 떠나고 싶기도 합니다.
내 일, 내 사람들에게 잘 하고 싶은데, 몸과 마음이 지치면 나라는 존재는 뒷전으로 밀려난 것 같아서 무엇이든 쉽지 않아지기 때문이지요.
혹시 그런 날을 보내고 있는 분이 계시다면 추천해드리고 싶은 책입니다. 제목부터 <주말에는 아무데나 가야겠다>입니다.
저자인 이원근 씨는 아버지를 따라 여행사에서 일하며 국내여행만 17년을 다니며 전국 방방곡곡을 누빈 여행박사입니다.
그런데 특이한 점은, 다른 여행사들에서 유명 관광지의 명소와 유적, 유명 식당들을 소개하였다면 이 책은 우리가 들어보지 못한 오지 마을들을 소개해준다는 점입니다.
강원도의 귀네미마을, 법수치리마을, 경상도의 대티골마을, 예천 용궁, 전라도의 도리포마을, 충청도의 독곶마을, 경기도의 국화도 등, 이름만 듣고는 낯설고, 직접 찾아가는 길도 만만치 않을 것 같은 오지 마을들.
하지만 우리가 꿈꾸던, 가고 싶었던 곳들을 구슬 꿰듯 하나하나 찬찬히 소개해주는 책입니다. (주소와 연락처 같은 기본 정보에 더해 저자만의 추천 일정과 근처의 즐길 것들을 적어놓았습니다. 골몰골목 찾아가는 길에 대한 설명도 오지 여행에 유용한 팁이 될 것 같아요.)
천천히 자신만의 시간을 벌기 위해 떠나는 여행을 생각하고 있다면 이 책을 펼쳐보고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저자가 소개해주는 우리나라 골골샅샅, 각 지방의 향토색이 묻어나는 에피소드와 사람들, 정 많은 한상차림, 야생화와 강의 물줄기를 따라가다보면 절로 마음이 평화로워집니다.
그리고 제 기억 속에 인상 깊었던 구절을 몇 개 소개해봅니다.
저자의 바람처럼, 이야기 속에서 사랑과 격려를 얻고 여행을 떠나고 싶었던 분은 길을 떠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
봉화에 도착해서는 현지 분을 만났다. 그분 또한 명물이었다. 백천동계곡의 땅을 가장 많이 소유하고 있으며, 이곳을 세상에 알리기 시작한 분이기도 했다. 농사꾼의 흔적은 뚜렷했고, 구수한 경상도 사투리에 다소 억세 보였지만 몇 마디 나누어보니 순수한 사람임이 틀림없었다. 그분과 계곡길을 걸으며 나는 감탄을 숨길 수 없었다.
“세상에 이런 곳이 우리나라에 있었다니!”
“좋제?”
“네!”
(중략)
이 마을에 처음 왔을 때는 이상하게도 기분 좋은 기운에 눌렸고, 두 번째 방문했을 때엔 계곡의 아름다움에 놀랐고, 세 번째엔 진심을 다해 보존하고 싶은 곳이라는 생각하게 되었다. 자연은 그대로 있을 때가 가장 아름다운 법이다. 이곳에서 열목어를 잡거나 쓰레기를 버리거나 자연을 훼손하는 행동을 해서는 절대 안 된다. 반드시 그대로 놔두어야 한다.
(232p, 234p, 경상도 대현마을, 백천계곡)
+
아버지는 자신에겐 병원이 산이라며, 산에 다녀왔더니 몸살이 좀 나아진 것 같다며 웃어넘겼다. 그렇게 산을 좋아하시던 만큼 영화나 연극을 보는 여가생활은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어느 날 <엽기적인 그녀>를 봤느냐는 아버지의 물음에 나는 많이 놀랐다. 그러면서 견우와 그녀가 타임캡슐 묻은 곳을 찾아야겠다고 하셨다. 조사해보니 정선 쪽이었다며 당장 출발하자고 하셨다. 우리는 출발했고, 산을 그렇게 찾아헤맨 적이 없었다. 등산로를 찾는 것엔 하도 이력이 나서 식은 죽 먹기였지만 소나무 한 그루를 찾으러 다니는 건 정말 쉽지 않은 일이었다. 한번에 가서 찾지 못하고 정선의 예미읍을 쥐 잡듯이 헤매며 찾아다녔다. 아버지는 소나무 수십 개를 사진 찍어와 이게 그 나무가 맞냐며 잘 비교해보라고 하셨으나 전부 영화에 나오는 소나무는 아니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고, 어느덧 소나무 찾는 것을 포기하신 줄 알았는데 아침에 보면 또 정선으로 떠나 계셨다. 그렇게 발품을 팔고 팔아서 드디어 찾았다는 연락이 왔다. 그렇게 기뻐하는 아버지의 모습은 처음 보았다.
(182p, 강원도 새비령, 엽기소나무)
+
등반을 마치고 내려오는 어느 비 오는 날의 일이었다. 주변에 가게도 없고 배는 고프고 해서 마을을 둘러보았다. 어느 할아버지가 마루에 혼자 앉아 계셨다. 함께한 대원들이 비를 맞고 추위에 떠는 것을 보고만 있을 수가 없어 할아버지께 말을 걸었다.
“죄송하지만 드시다 남은 소주가 있다면 파시면 안 될까요?” 할아버지께서는 막소주 됫병을 건네주셨다. 대원들과 소주를 나눠 마신 뒤 할아버지께 5,000원을 건네며 “돈을 이것만 드려도 될까요?”라고 여쭈니 막 화를 내시길래 만 원짜리를 건넸더니 더 큰 화를 내셨다. 돈을 건네는 것 자체에 화가 나셨던 것이다.
(291p, 전라도 흥부마을, 똥돼지를 키우는 마을)
(214p, 강원도 원대리, 누르는 막국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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