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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 Movies & Books

< 詩누이> 시가 읽고 싶어서

by Jiwon's Lab 2017. 6.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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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평소에 다른 사람들이 무슨 책을 읽고 사는지 몹시 궁금해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지하철을 타다가 옆자리에 앉은 사람이 책을 읽고 있으면, 무엇을 읽고 있을까 몰래몰래 쳐다보고, 신기해하고, 즐거워한다. 그러던 어느 날은 얼굴선이 굵고 시원시원하며 짧은 투블럭컷을 한 남자가 맞은편에서 사랑 시집을 들고 읽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너무 귀여워서 핸드폰에 메모를 남긴 일이 있었다. 시를 읽고 있는 사람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어떤 마음으로 시집을 들었을까 자연스레 궁금해졌다.


그러다가 나도 시집을 찾게 된 기회가 있었는데, 그 날은 기분이 너무 울적해서 일을 마치고도 그대로 집에 가지 못한 저녁이었다. 그때 나는 버스를 타고 아홉 정거장, 인사동을 지나 광화문에 큰 교보문고로 숨어 들어갔는데, 크고 작은 책들이 제각기 다른 분위기로 반듯이 세워져있고, 누워있기도 한 풍경을 보고 마음이 차분해졌다. 그렇게 한참을 이리저리 둘러보고, 바닥에 철푸덕 앉아 끌리는 책의 허리 가운데부터 마음 닿는 대로 꼼꼼히 읽다보면 어느새 그 세계에 동화되는 것이 좋았다. 정해진 예산선을 한탄하며 고르고 또 골라 마지막으로 선택받은 책 몇 권을 한 아름 안고 나올 때면 신기하게도 그 속엔 꼭 시집들이 남아있었다. 시를 잘 알지도 못하면서, 마음이 빈곤해지고 허덕인다 싶을 때에는 평소엔 친하지 않던 시가 그렇게 눈에 밟히고, 읽고 싶어졌다. 무엇이 시를 읽고 싶게 만드는 걸까?


그렇게 집에 와서 들고온 시집을 읽어보려 했지만 시를 읽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때로는 투박하고, 때로는 마치 이 세상의 것이 아닌 듯 순수하고 투명한 시어들을 만나면, 그 의미는 무엇일까, 시인은 무엇을 표현하고자 하는 걸까 이해되지 않아 답답했다.

시를 읽고 즐기고 싶은데, 생각 만큼 쉽지 않은 것. 그렇다면 우리가 보다 더 쉽게 시에 다가갈 수 있는 법은 없을까?


그때 마치 누군가 내게 장난을 친 것처럼 <詩누이>라는 책을 접했고, 이 책은 내가 시를 조금 더 편하게 생각해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시를 웹툰으로, 에세이로 재미있게 엮은 책이다.


(작가는 <싱고,라고 불렀다>를 쓴 시인 신미나, 그림을 그릴 때는 '싱고'라는 이름을 사용하신다고 소개되어있는데, 시도 쓰고 그림도 그린다니 이게 바로 창작자의 멋짐인가....ㅎ)



이번 달 <창비>가 펴낸 신간! 출판사에서 직접 보내주신 거 받은 적이 첨이라 설렜다... 그리고 초판이야 1쇄라고 적혀 있어!! 좋다좋다 나 이런 거 첨이란 말야ㅠㅠ


<詩누이>를 펼쳐보면 이렇게 싱고의 그림과 글이 어우러진 웹툰이 나오고

짧은 에피소드가 지나면

그와 비슷한 결을 가진 다른 시인의 시가 한 편씩 소개되어있다. 





이런 그림과 글, 포근하고 귀엽다. :)


인간관계, 사회생활, 밥벌이, 자기관리, 사랑, 가족, 점점 나이먹음 등등... 사람들은 다 자신만의 고민과 스토리를 안고 살지만 서로에게 관심을 기울이고 이야기를 들어주기에는 너무 바쁜 시대가 된 거 같다. 


이런 시간을 살면서, 내게 이 책은 일상 속의 작고 초라하다 싶었던 내 고민들이 삶과 세상, 사람들과 마음의 영원한 문제들 속에서 어떻게 자리 잡게 되었는지 하나씩 실타래를 풀어보며 잠깐 멈춰보는 의미로서의 역설적인 시간 여행이었다. 책을 읽는 것이 때로는 나태해지고 고착된 생각의 틀을 깨고 스스로를 자극하며 박차를 가하려는 노력일 때도 있지만, 때로는 언제나 쉼 없이 달려온 스스로에게 잠깐 멈추고 앉아있다 가라고, 내 소매를 잡아 끌어주는 따뜻한 위안이 될 수도 있는 것 같다.



또 새로운 시인들과 시를 많이 알아가는 재미도 있다. 익숙한 이름의 시인도 있고, 많이 본 제목의 시집에 수록되어있던 시도 있지만, 시를 너무 안 읽어본 내게는 처음 소개 받은 시인들과 시가 훨씬 더 많았다 (ㅎㅎ...) 그런 의미에서 새로 알게 된 시 중에서 마음에 와닿았던 구절을 적어본다. 이 시를 읽고 참 좋다- 맞아- 생각하고 가슴이 울렁했거든...


당신이 나에게 가장 성실한 사람입니다

나는 당신에게 가장 성실했던 사람일까요?


당신이 성실한 사랑의 냄새를 맡고 싶다고 해서

제가 당신 손을 꼭 잡아주었는데

이 짧은 걸 하려고 사람은 오래도 사는구나

- 김현, 두려움 없는 사랑 中



싱고의 담백한 글과 감성적인 그림으로 예열된 마음이 한 에피소드의 끝마다 색다른 시를 읽을 때면 

자꾸 시를 더 천천히, 소리 내어 읽고 싶어진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것도 혼자 방에서 야심한 새벽 시간 시를 소리 내어 읽게 된 비하인드 스토리라면 스토리...)


그래서 자기 전 침대 머리맡에 두고, 도서관에서 하루를 불태우고 집으로 돌아가는 지하철 막차 안에서 자꾸 들여다보고, 순서대로 읽었다가 거꾸로 읽다가를 마음대로 반복했던 것 같다.


참 기분 좋은 책이다. 잔잔한 호수를 들여다보며 주위를 둥글게 한 바퀴 산책하고 온 느낌.

또 한 바퀴 돌면 좋겠다 싶을 때 다시 펼쳐보면 좋을 것 같다.


그리고 이 책을 아직 못 본 사람에게 <詩누이>를 읽게 되면 꼭 작가의 말을 한번 읽어보라고 말하고 싶다!

시를 바라보는 우리의 마음이 언제까지나 자유롭기를 바라면서, 행복하게 공감했던 말이 담겨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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