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 뭐하자는 인간이지 싶었다 / 이랑
읽을 책을 고르는 데에는 다양한 이유가 있을 수 있겠지만, 내가 이랑의 <대체 뭐하자는 인간이지 싶었다>를 고른 이유는 사정없이 눈길을 잡아끄는 새빨간 표지와 도발적인 제목 때문이다. ‘도대체 뭐하자는 인간이지?‘라고 의구심을 품는 예민함에다, 시니컬하면서도 어쩐지 유머러스할 것 같은 목소리는 과연 어떤 이야기를 품고 있을지, 궁금해졌다.
책날개의 작가소개부터 싱그러운 이랑,
(그녀는 “한 가지만 하라”는 말을 많이 듣는 사람이고 ‘가출 겸 출가’를 하고 처음 일러스트레이터 일을 시작한, 소개부터 대단한 이야기 화수분의 느낌을 물씬 풍긴다.)
결과적으로 이 책의 선택은 대만족이었다! 실제로 나는 대출한 당일 그 책의 마지막장까지 읽고선 개인 소장을 위해 인터넷으로 주문까지 하게 되었다.
인간 이랑의 에세이집이면서, 그녀의 여러 업의 대한 비하인드 스토리 (영화감독, 작가, 음악가, 일러스트레이터... 두루 하고 싶은 일들을 겸하는 빛나는 사람이다), 그렇다고 마냥 빛나지는 않지만 낭만이 있어 마음을 두드리는 삶과 사랑에 대한 솔직한 이야기, 고양이와 가족, 함께 나이드는 청소년기의 그림자, 관계에 대한 근원적인 그리움, 아티스트이자 한 인간으로서의 한여름 같은 활력과 욕망에 대한 생각을 담고 있다. 그리고 묘하게도, 그 이야기들이 나에게도 그랬던 것처럼 이질감 없이 많은 사람들에게도 공감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영화감독으로서, 음악가로서, 일러스트레이터로서 경험하는, 단단히 꼬인 일과 삶의 매듭,
노래를 가르치며 만난 상처 입은 어린 아이들의 눈물,
아픈 동생과 의지할 수 없었던 부모님에 대한 엇갈리는 마음,
진실로 사랑했거나 그렇게 많이 사랑하지는 않았던 애인들,
맑고 투명하게 웃는 순간들, 손뼉치고 기쁨을 나누는 사람들,
그렇게 삶을 나눠갖는 친구들에 대한 애틋함, 그 감정들을 표현한 노랫말,
자신에 대한 불확실함과 언제까지나 생경한 삶에 내재된 불안과 두려움
그럼에도 이렇게 에세이를 쓰고 세상에 내놓게 되는 인생의 변주.
나와는 전혀 다른 길을 걷는 사람의 글, 전혀 다른 특기와 관심과 습관과 꿈을 가진 사람의 하루하루. 신기하게도 나는 그 속에서 마음 찡하게 공감되는 감정의 결을 느끼고, 몰입할 수 있었다. 난 그 이유가 무엇일지 생각해보았다.
아마도, 그녀의 목소리에는 직업도 국적도 나이도 성격도 초월하는 어떠한 가치가 깃들어 있는 것 같다. 모든 에세이 속에서 그녀는 솔직하고 그녀 그 자체이다. 스스로를 처절하게 성찰하고, 비판하고 보듬고,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 바뀌는 것과 바뀌지 않는 것에 대해서 계속 깊이, 더 깊이 생각해보는 성실함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녀의 나레이션은 포장 따위 하지 않은 우리의 맨삶과 맞닿아 있고, 사랑할 수밖에 없는 우리들의 혼란 가득한 젊음과 겹쳐진다. 다양한 것들을 이야기했지만 그 끝에는 어떤 결론도, 총평도 존재하지 않는 에세이. 그래서 평범하면서도, 다른 곳에서는 보지 못했던 신선하고 독특한 울림을 가지는 것. 누군가 “우리는 대체 뭐하자는 인간이지?“라고 묻는다면, 그건 누구도, 아직도, 그리고 영원히 모르는 일이라고, 이랑도 그래서 그렇게 질문을 던지지 않았더랬냐고 대답해주고 싶다.
'Art, Movies & Books'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신화에게 길을 묻다 (0) | 2017.10.15 |
---|---|
주말에는 아무데나 가야겠다 (0) | 2017.10.15 |
여행할 권리 (0) | 2017.07.05 |
< 詩누이> 시가 읽고 싶어서 (0) | 2017.06.17 |
분열된 인간상에 공감한 작가,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 (0) | 2017.05.28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