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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일기

중간고사 컴플리티드

by Jiwon's Lab 2015. 10. 23.

​2015. 10. 23 금요일 중간고사 5th day

오늘 5일 간의 중간고사를 마무리했다. 처음으로 전공만 6개로 꽉꽉 채운 학기를 맞이했고, 그에 따른 스케줄은 절대 평이하지 않았다. 매일 한 번의 전공 시험을 치렀고, 글로써 평가되는 수업을 위한 리포트를 작성했다. 매일 하고 싶은 것을 참아야 하는 인내의 훈련이었고, 흐트러지지 않는 집중력이 필요한 기간이었다. 그리고 난 그만큼 '딴짓'도 많이 했다.

1. 근황토크

일과의 촘촘한 시간표에서 스물한 살 중반에 들어선 나는 개인적으로 여러 변화를 겪고 있었다. 스스로의 대한 생각을 더 하게 되었고, 하고 싶은 것, 좋아하는 것, 잘하는 것, 관심 있는 것, 자신감 있는 것. 그리고 그와 대조되는 어려워하는 것, 기피하는 것, 불편해하는 것, 부담스러워해하는 것들을 조금씩 알게 되어간다. 그리고 여러 활동들이 이런 범주들 사이를 옮겨가며 패턴이 유기체처럼 점점 변화한다. 초여름의 나와 늦가을의 나는 비슷한 듯 다르다. 표정도, 시선도, 시야도, 고민도 어느새 바뀐다. 마치 방송사 시즌 개편을 하는 것처럼 그 변화가 극적으로 한 시점을 기준으로 올 때도 있고. 하루의 그림자가 몇 분 단위로 조금씩 길이가 달라지듯, 발 끝 축구공만했던 그림자가 가로등만한 크기로 늘어지는 것처럼, 매순간 조금씩 이동하기도 한다. 그리고 주위 사람들도 함께 저마다의 '변화'를 겪고 있는듯하다. 처음은 변화가 마냥 불안하고 혼란스러웠다. 그런데, 지금은 그 긴장감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싶어졌다. 난 자연스러운 사람이 되고 싶다.

2. 청개구리

사람들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고 한다는 말은 팩트인 거 같다. 인간의 본성이라는 것을 거스르는 '이탈'은 절대 평범하지 않은, '비범한' 노력이 필요하다. 조금은 쌩뚱맞게 이런 말을 쓰는 것은 아마도 내가 항상 시험기간 때마다 느끼는 반복적인 감정의 소용돌이를 설명하기 위한 나름의 노력일지도 모르겠다.

시험기간에는 항상 평소에 게을러서 열심히 하지 않았던 것들, 가지 않았던 곳들, 쓰지 않았던 것들을 모조리 다 하고 싶은 변덕스러운 충동이 머리 속 온 생각들을 뒤덮는다. 심지어 평소에는 흥미 없던 것에도. 내가 시험기간 때 평소에 안 보던 인스타그램을 들락거리고, 페이스북 스크롤을 미친듯이 내리는 것도 다 이 때문이다. 시험기간에 오히려 방청소를 열심히 하고, 읽고 싶은 책을 펼쳐 밤늦게까지 탐독하고, 안 보던 드라마까지 검색해 조각영상을 챙겨보는 아이러니도 이런 청개구리 심리 때문 아닐까. 

3. 현실감 한 그릇

중간고사가 시작되기 일주일 전, KOTRA 채용 설명회를 다녀왔다. 처음으로 간 채용설명회라서 더 느낀 점도 많았고, 어렴풋이 상상하던 것들 위에 정말 현실적 정보의 색채를 더한 느낌이 들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기 위해서는 노력해서 그 자리를 먼저 쟁취해야한다는 깨달음이 찾아와 조금 두렵기도 하고, 인정하고 싶지 않은 경쟁의 세계를 문득 조우하게 된 것 같아 씁쓸했다. 하지만 정말 좋아하는 일이라면, 그만큼의 노력을 해야할 것이다. 노력하는 사람에게 행운이 찾아온다고 믿는다. 문제는 다 너무 노력해서 모두에게 기회가 찾아오지는 않는다는 것이겠지..?ㅎㅎ 이럴 땐 <미생>의 장그래의 말처럼 "양과 질"이 다른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것인가. 아직 2학년인 학부생은 우선 넉스레를 떨어본다.

4. 그렇지만 곧 3학년 되고 4학년 될 것이다. 나도 안다. 지금도 내 방식대로 열심히 살고 있다. 의미있게.

5. 성취

이번 중간고사의 마지막 시험은 '중급러시아어연습2'이었다. 한 시간 반동안 리스닝, 라이팅, 문법, 해석 문제를 풀고 답안지를 검토하고 교수님께 제출할 때 나는 뒤를 돌아보고 깜짝 놀랐다. 강의실이 텅 비어 있었다. 내가 마지막으로 답안을 낸 수강생이었던 것이다. 모든 감각을 집중시켜 한줄한줄 답안을 써냈던 것 같다. 시험의 결과보다 내가 그렇게 열심히 무언가에 열중해서 집중력을 보였다는 것이 성취감을 안겨줬다. 성취라는 단어. 내가 좋아하는 단어 중 하나다. 1학년 때 먼저 도전이라는 단어를 모티프로 삼았다면, 이제 어느새 성취라는 단어의 매력에 빠졌다. 나는 성취를 유달리 중요시하는 사람이다. 내가 하는 일에 대한 자부심과 성취감으로 인생의 의미를 재확인한다. 하지만 그에 비해 독기는 빠진다. 난 성취를 중요시하는 만큼 행복도 중요시하기 때문이다. 삶의 여유와 나의 존재에 대한 만족을 누구에게도 무엇에게도 뺏기지 않고 지키는 것이 그 못지 않게 중요하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나는 중도를 추구하는 사람 같다. 동전의 양면처럼, 이 말도 뒤집어보면 결국 나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으려하는 사냥꾼이라는 것이다.

6. 대학로

 시험을 끝마치고 허기가 져 곧바로 친구와 맛있는 저녁을 먹으러 대학로로 빨려들어갔다. 가고자 했던 피자집이 어느새 이전을 한 건지 건물이 그 자리에 휑하니 비어있어 다른 피자집을 찾아갔다. 다양한 메뉴를 시키고 싶은데 여자 두명이 다 먹을 수 있는 양일까 처음에 고민을 했지만 결국 피자 한 판과 파스타 한 접시를 너무도 당연한 적량인듯 음미했다. 다 먹고도 전혀 위가 부담스럽지 않아서 둘이 황당해하기도 했다. 너무 맛좋고, 걱정없이 행복한 저녁이었다.

저녁을 먹고 음악영화제에서 재상영하는 '위플래시'를 관람했다. 오랜만에 영화를 본 것이었는데 감상을 제대로 새로 글을 써야겠다. 영화관에서 나와서는 대명거리에서 버스킹을 하는 남녀의 노랫소리 기타소리를 듣고 가려고 편의점에서 병맥주를 하나씩 샀다. 목소리가 생기있는 여자와 클래식 기타를 치는 남자 주위로 지나가던 사람들이 조금씩 모여들어 반원을 그렸다. "비상9"라 불리는 그들의 버스킹은 성공적인 것 같았다. 걷는 폼이 귀여운 작은 여자아이가 노래하는 언니에게 다가와 수줍게 천 원을 주고, 어린 두 손뼉을 모아 박수를 쳤다. 예쁜 풍경이었다. 

시험을 마치고 거리에 나오니 마음이 여유로 가득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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